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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야화

두번의 죽을고비

by 정보맨1 2022.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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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은 엄부 밑에서 자란 점잖은 선비다.
과거 볼 날이 두어달 남았지만 일찍이 한양으로 올라가 작은아버지 집에 머물며 

마무리 공부를 하려고 단봇짐을 지고 집을 떠났다.

엄격한 집안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다가 확 트인 바깥 세상으로 나오자 

훨훨 날아갈 것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새재 아래 주막에서 두다리 쭉 뻗고 탁배기 두병을 마시고 나자 

온 세상이 자기 것처럼 보였다. 산자락에 해가 남아 있어 새재를 넘기로 했다.

빨리 한양에 가고픈 마음에 발길을 재촉했지만 새재는 높았다. 

금방 해가 떨어졌다. 새재 아래 골짜기에 불빛이 하나 보여 

숲을 헤쳐 조그만 초가집에 다다르니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나왔다.

“혼자 사는 집이라 재워 줄 수 없습니다.”
그 말에 이송은 와들와들 떨며
“살려 주시오, 부인. 여기서 쫓겨나면 오늘 밤 생명을 부지할 수 없습니다.”

여인은 한숨을 토하더니 안방을 이송에게 내어 주고 자신은 

장지문을 사이에 두고 윗방으로 갔다. 얼었던 몸이 녹고 나자 이송의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여인의 숨소리까지 뚫어진 장지문 사이로 들려오자

 혈기 방장한 열아홉 이송은 문을 박차고 윗방으로 들어갔다.
“또 한번 살려 주시오. 이대로는 밤을 지새울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때,
‘철썩’ 이송의 뺨에 불이 났다.

여인은 은장도를 뽑아 자신의 목에 댔다.
“내 몸에 손을 대면 나는 목숨을 끊을 것이오.”

안방으로 돌아온 이송은 냉수를 들이켜고 나자 술이 깼다.

 회한에 몸부림치며 벽에 이마를 찧던 이송은 단봇짐 끈을 풀어 

마당에 나가 감나무에 목을 맸다.

그런데 ‘쿵’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이 무슨 짓이오! 사내대장부가 그깟 일로 부모에게서 받은 목숨을 끊다니!”
그녀가 낫으로 줄을 끊었던 것이다.
동이 트기도 전에 이송은 그 집을 도망쳐 새재를 넘었다. 

하루 종일 땅만 본 채 길을 걸으며 이송은 자괴감에 몸을 떨었다.

또 날이 저물어 충주 나루터 외딴 주막에 들어갔다.
초겨울이라 객방은 텅 비어 이송 혼자 유숙하게 됐다.

저녁상을 받자 우람한 덩치의 주막집 남자가 주모에게
“나는 강 건너 오가네 상가에 가네. 

거기서 밤을 새우고 내일 아침 출상하는 거 보고 올 것이야”

하며 나가자, 주모가 삽짝까지 따라 나가며
“추운데 고뿔 들지 않게 조심하시유”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저녁상을 물리고 호롱불에 책을 펴 들었는데
“손님 계시유?”
주모가 시키지도 않은 술상을 들고 들어오고 이송이 극구 사양했음에도 

주모는 갖은 교태를 부리다 호롱불을 끄고는 치마를 벗어 던지고 

이송을 껴안자 이송은 지난 밤 후회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보시오, 이게 무슨 짓이오. 빨리 나가시오.”
바로 그때
‘꽝’
문을 박차고 들어온 건 상가에 간다던 그녀 남편이었다.

“네년의 꼬리를 이제야 잡았구나.”
칼날이 번쩍이고 객방은 피바다가 되었다.

“손님,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피 묻은 칼을 닦으며 남자는 이송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한양 작은 아버지 집에 도착하여 두달 후, 

급제를 한 이송이 금의환향 길에 새재 아래 그 여인 집에 들렀다.

그녀는 소복을 벗고 평복 차림이었다.
남편의 삼년상이 끝난 것이다.

“당신은 두번이나 내 목숨을 살렸소. 당신이 아니었으면 

나는 충주 나루 주막에서 객사했을 것이오.”

이송은 그녀를 데리고 고향집으로 내려가 

꽃피고 새 우는 봄에 혼례를 올리고 해로했다.


https://youtu.be/Ttbd3rGM5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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